
2025년 2월, 일본에서 응급피임약 '노레보'가 처방전 없이 약국과 드럭스토어에서 구매 가능해지면서 한국 내에서도 관련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OECD 가입국 32개국 중 한국은 헝가리, 터키 등 소수 국가와 함께 여전히 의사 처방전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제도적 차이 속에서 여성의 접근성, 안전성, 그리고 심리적 부담이라는 복합적 문제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과연 응급피임약은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할까요?
일본 약국 판매 제도의 실제와 안전장치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4년 10월 응급피임약 '노레보'를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약품 목록으로 전환했고, 2025년 2월 2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 결정의 핵심 배경은 병원이 멀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등 병원 방문이 어려운 여성들이 복용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노레보는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1회 복용 시 약 80% 확률로 임신을 방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복용 시점이 빠를수록 효과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단순히 자유 판매만을 허용한 것이 아닙니다. '직접 구매'와 '즉시 복용'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통해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응급피임약은 복용을 희망하는 본인이 직접 구매해야 하며, 나이 제한이나 부모 동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약사와 대면한 상태에서 복약지도를 받은 뒤 그 자리에서 즉시 복용해야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또한 약사 역시 응급피임약 처방을 위한 전문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접근성과 안전성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 결과로 평가됩니다. 2021년 응급피임 국제컨소시엄(ICEC) 자료에 따르면 147개 국가에서 응급피임약을 구할 수 있으며, 이 중 19개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자유롭게, 76개국에서는 의사 개입 없이 약사의 안내에 따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이 이미 처방전 없는 구매를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변화는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 현지 매체들도 응급피임약은 어디까지나 응급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예비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의사 처방 제도와 의료계의 우려
한국에서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어 약국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달리 의사 처방전이 필수입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응급피임약을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일반의약품 지정을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의료계는 응급피임약의 안전성 문제를 핵심 근거로 제시합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모든 의약품은 편리성보다 건강상 해로움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면서 "일반피임약의 10배 이상의 고용량 호르몬을 함유한 응급피임약은 유용성에 비해 위험성이 높아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품"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응급피임약을 복용한 여성의 약 50%는 메스꺼움을, 20%는 구토 증세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용량 호르몬으로 인한 신체적 부작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약물 사용을 부추기고 실질적인 임신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김재연 회장은 "노르웨이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응급피임약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바뀐다고 해도 인공임신중절 수술률은 줄지 않는다"며 "사전피임약 사용률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의 피임 성공률은 남성용 콘돔 (82~98%)과 사전피임약 (91.3~99.7%)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의료계는 응급피임약이 일상적인 피임 수단으로 오인되어 오남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편리함도 좋지만 여성의 응급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구매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계의 논리에도 반론은 존재합니다. 처방전 제도가 실제로 안전성을 보장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접근성만 제한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논의가 무산된 이후에도 여성계와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성 심리 불안과 접근성 개선 대안
사용자가 제기한 비평은 제도 논의에서 종종 간과되는 여성의 심리적 부담이라는 중요한 측면을 조명합니다. 피임에 실패한 여성은 임신 가능성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응급피임약은 72시간 이내 복용해야 효과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현행 한국 제도에서는 병원 진료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며, 주말이나 공휴일, 야간에는 응급실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대기 시간 동안 여성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상당합니다.
또한 의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성관계와 피임 실패라는 사적인 상황을 낯선 의료인에게 설명해야 하는 부담, 때로는 비난이나 훈계를 들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여성들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이러한 심리적 장벽은 더욱 높아집니다. 의사와의 면담이 부작용에 대한 안내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료계 주장도 타당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비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즉시 복용' 원칙은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약사가 보는 자리에서 직접 복용하도록 함으로써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약물이 실제 복용자 본인에게 전달되고 즉시 사용되도록 보장하여 오남용을 방지합니다. 둘째, 복용 직후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약사가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이는 접근성과 안전성을 모두 고려한 절충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제기한 또 다른 중요한 지적은 인공임신중절 수술률에 대한 실제 통계 확인의 필요성입니다. 의료계는 노르웨이 등의 사례를 들어 응급피임약 접근성 확대가 낙태율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데이터 기반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임신중절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응급피임약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한국 여성들의 실제 피임 실패율, 응급피임약 복용 경로, 접근성 장벽,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의도하지 않은 임신률 등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처방전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 의료 접근성, 약물 안전성이라는 다층적 가치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일본식 약사 관리 모델, 온라인 원격진료를 통한 처방전 발급, 야간 응급 처방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대안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지적처럼 이 문제는 여전히 논의해야 하고 그 대체방안을 중심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입니다. 여성의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
응급피임약 접근성 논쟁은 편의성과 안전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여성의 심리적 건강과 실질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의료계의 안전성 우려도, 여성계의 접근성 요구도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논의와, 일본처럼 접근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한 제3의 대안 모색입니다. 응급상황에 처한 여성이 불필요한 심리적 압박 없이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출처]
일본, 응급피임약 편하게 산다 / 매일경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2/0000087744